건강보험 결국 폐기처분...美선 보험진료 ‘거부’ 사태 
 
의료기관의 90%가 민간이고, 돈벌이 의료에 관심이 높은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이다. 단적인 예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의 진단장비를 들여와 검사를 하는 것인데, 2005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컴퓨터단층촬영기(CT) 수는 32.2대로 OECD 22개 나라 가운데 가장 많다.

그나마 건강보험제도라는 의료비 통제수단을 통해서 비용을 관리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총진료비는 연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리와 지원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료와 의료비는 빠르게 치솟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리법인병원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영리법인병원은 비영리병원이나 공공병원에 비해 같은 질환에 대해 의료비가 월등히 비싸다. 환자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에는 차이가 없더라도 이윤을 더 많이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리법인병원의 경우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며 비급여를 확대하여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 뻔하다. 결국, 건강보험제도는 영리법인병원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다 사용기한이 지나면 폐기처분 될 운명으로 전락될 것이다.

최근 들어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면 좋은(?) 병원이 등장하여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고 병원 간 경쟁이 활성화되어 의료비가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활개를 치고 있다. 단언하건데,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급성기 치료영역에서 경쟁을 통해 가격이 떨어진 전례는 인류역사에 없었다. 이건 필자 개인의 주장이 아니고 수많은 국내외 실증적 연구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교과서적 사실이다.

의료보험으로 인해 소비자는 가격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고 첨단 장비와 시술이 가능한 보다 좋은 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기 때문에 경쟁병원들 모두 시설·장비 고급화와 우수 인력유치에 몰두하면서 의료비는 급등하게 된다. 공급이 증가하여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라식수술, 성형수술 등 극히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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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의료보험 민영화의 실태를 까발린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

이러다보니 민간의료보험회사가 중심인 미국 같은 곳에서는 급증하는 의료비 탓에 보험회사가 아예 가입자의 진료 자체를 거절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식코(Sicko)'에 그 많은 비참한 사례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 미국 ‘우파’들은 아예 의료보험제도를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들이 내세우는 대안은 의료보험을 폐지하고 개인별로 ‘의료저축통장(Health Savings Accounts)'를 의무적으로 만들어서 월 일정액을 계좌에 적립하게 하여 실제 의료를 이용할 때 이 통장에서 자율적으로 돈을 꺼내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만약, 통장이 바닥이 난다면?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집을 팔든, 파산을 하든, 병원 문 앞에도 못가보고 죽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본격화되면 소비자가 의료비에 민감해질 것이고, 공급자들도 저가 서비스 출시에 본격 가세할 것이라는 논리가 기저에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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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물의 한 장면


한마디로 의료보험의 보조 없이 의료비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접점 그 위치에서 결정되도록 하자는 뜻이다. 제왕절개 수술비가 2천만원에 달하는 미국에서, 첨단장비와 고가의 신약이 필수적인 의료시장에서 어떠한 신기원이 펼쳐질 것인지 각자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괴물’의 세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최근 제주에서 영리법인병원 허용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핵심은 의료를 시장에 방임하자는 것이다.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면 자본 투자가 활성화되고 좋은 병원이 만들어져서 외국환자들이 몰려올 것이고 이로 인해 지역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경쟁이 활성화되어 의료비도 떨어지고 건강보험마저 적용되기 때문에 도민들에게는 일절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시장에 ‘자본’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게만 해주면 시장이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고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우리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미국을 잘 들여다보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의료를 시장에 방임한 결과 출현한 ‘괴물’같은 세상을.

 /제주의대 박형근(의료관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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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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